관모를 중심으로 한 유물의 소개와 정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통일기의 신라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했지만, 유물의 종류와 수가 매우 적으며, 또 불교의 火葬 풍습 등으로 인해서 자료 자체가 많이 없는 탓에 일단 빼기로 한다. 참고된 자료는 윤세영의 {고분 출토 부장품 연구}라는 책인데, 그 밖에 자
관모류 등도 상당수 발견되고 있으며, 또 각 나라마다 제작수법이나 의장이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본고에서는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 각국의 관을 조사하였는데, 대체로 신라, 고구려, 가야에서는 금관이 중심이었던 반면 백제의 경우 금동관과 관모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II. 각
금관에 대하여 알아보는데 의의를 두고 조사하여 보았다.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현존 유물을 중심으로 연구범위를 정하고, 선행 논문과 각종 고분 출토 조사서 및 관계 문헌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일반적 고찰에서는 시대적, 정신적 배경을 알아보고 신라금관의 준비과정에서는 본격적인 설명
금관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신당서』에 이르기를 “고구려왕은 오색 옷을 입고 흰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며 가죽띠에는 모두 금테를 두른다.”고 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가 남아 있다. 현재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안악3호분을 보면 그 묘주인이 왕만이 쓸 수 있
금관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新唐書』에 이르기를 "고구려왕은 오색 옷을 입고 흰 비단으로 만든 관을 쓰며 가죽띠에는 모두 금테를 두른다."고 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가 남아 있다. 현재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되는 안악3호분을 보면 그 묘주인이 왕만이 쓸 수 있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 발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복식문화도 발전하게 되었으며 두식과 관모도 자연스럽게 외래문화(대륙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었다. 고구려의 대외관계는 반도북쪽에 위치하여 중국대륙으로의 문호가 개방되어 접촉이 많았고, 고구려 의복
출토되는 금속공예품들은 정교하고 뛰어난 공예기술의 발전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특히 신라의 경우에는 지하에 무덤 터를 파 나무 덧널을 넣고 돌을 쌓은 뒤 바깥에 봉토를 씌우는 적석목곽분이라는 독특한 묘제로 인하여 고분이 거의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화려하고 뛰어
출토된 갖가지
미술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 공예미술의 축소판 이라 할 수 있는 사리장엄구와, 불교의 화장(火葬)의 영향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뼈 항아리 류[骨壺]들은 고대인의 죽음과 관련된 대표적인 유물들이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에 걸친 황룡사터 발굴 조사를
고구려, 신라, 백제가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 발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복식문화도 발전하게 되었으며 두식과 관모도 자연스럽게 외래문화(대륙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었다. 고구려의 대외관계는 반도북쪽에 위치하여 중국대륙으로의 문호가 개방되어 접촉이 많았고, 고구려 의복
Ⅰ. 고분의 정의와 고분을 연구하는 이유
고분이란 분구를 갖춘 고대의 묘를 말한다.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무덤을 통칭하는 뜻도 될 것이나,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서 한정된 시대란 선사시대 부족사회에서 고대왕조가 확립되는 삼국(三國)